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앙대학교/학내 언론 (문단 편집) === 개요 === 교내 신문사. '''대한민국 대학신문사 중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대학 신문의 효시) 1947년 9월 1일 중대신문은 '중대학보'라는 제호를 달고 최초의 대학신문으로 발간되었으며, 1948년 4월부터는 한국 언론사상 최초로 순한글판 가로쓰기 편집체제를 도입했다. 1989년 가을에는 중대신문은 대학신문 최초로 주2회 발행을 실시했는데, 주2회 발행은 대학언론 역사상 현재까지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중대신문의 자랑이라고 볼 수 있다. 1997년에는 대학언론 최초로 인터넷 신문을 개설했으며, 2003년에는 한국대학언론 사상 최초의 공식방북취재를 성사시켰다. 2012년에는 대학 신문 최초로 연재기획을 책(내가 나일 때 가장 빛난다)으로 출판하는 등 도전적인 실험과 더불어, 더불어 2012년 <시사IN> 대학신문상 학내 취재 보도상, 사진 보도상으로 2개 부문을 석권하고 올해 <시사IN>에서 사회 취재 보도상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2012·3년 2년 연속, 2015년 중앙일보 ‘올해의 대학신문상’ 최우수상 수상, 2014·5년 송건호대학사진상 2년 연속 수상 등 대외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단, 대학 최초 학보사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연세대학교 연세춘추와 숭실대학교 숭실대학보가 각자 자신이 가장 오래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중이다. 중대신문사의 주장에서는 연세춘추와 숭실대학보는 최초 발간일에서는 앞서나 이후 신문사로서 조직적으로 발간된 시점과의 기간의 텀이 지나치게 길다는 점을 들어 최초발간 신문과 현재의 학보발간 주체간의 연속성을 부정한다.[* 첨언하자면 최초 발간호가 중대신문사 편집실에 보관되어 있다. [[숭대시보]]의 경우 최초 발간호마저 망실. [[숭대시보]]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숭실대]]가 원래 평양에 적을 두고 있었고, 신사참배 강요에 반발하여 폐교해 [[숭대시보]]도 발행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광복 이후 평양 숭실 관계자들이 1954년 서울에 다시 재건했다. [[숭대시보]]도 숭실대가 재건됨에 따라 2년 뒤인 1956년 속간됐다. 그럼에도 중대신문은 서울대 대학신문에 이어 발행호 수가 가장 많은 대학신문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매주 발간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주 2회 발간체제로 신문을 만든 적이 있다. 이는 대학신문 중의 효시를 자처함에도 불구하고 서울대학교의 대학신문 등에 비해 적은 발행횟수를 만회하기 위함이었다. 현재는 다시 주 1회로 환원.] 단 중간, 기말고사 기간과 방학기간에는 신문을 만들지 않는다. 학내 정보의 수집 및 생산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학교에 사건이 터졌을 때 공식적인 학보 중에서는 가장 정확한 정보를 보도하는 곳이기도 하다. 제1926호(2018년 9월 17일)에서 '경영경제대 교수 막말·권위주의 논란' 기사를 통해 중대신문이 학내에서 가장 투명하고 공정한 신문사의 이미지를 갖추게 되었다. 다른 동아리들이 회비를 걷어간다면 중대신문사 기자들은 매학기 장학금을 지급받는다. 다만 학점을 포기하다시피 하는 신문사 생활을 감안한다면 매우 짠 장학금이라는 것이 신문사 기자들의 중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